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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linder/The past

E2. 수업시간에 딴짓하면 쓰나

그녀가 다시 그를 만난 건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연금술, 특히나 골렘 연성의 좋은 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연금술이 발달한 수도 타라와 탈틴 쪽으로 밀레시안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그녀도 그 중 하나였다. 평소 전투를 귀찮아하던 그녀로서는 손 하나 꼼짝하지 않고 골드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낀 지라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대강 여장을 꾸려서-라고 해 봤자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여행자 신분이니 특별히 준비랄 것도 없다-탈틴으로 갈 준비를 했다.

다만 골렘 연성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연금술의 기초를 알아야 하고, 그 기초를 공부하기 위해선 또 세세한 연금술 스킬들을 모두 습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녀가 절망했던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자명했다.

 

팔자에 없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했지만 이때까지 손 댄 게 아까워서 그녀는 결국 연금술 붐을 타고 타라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강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를 눈치챈 것은 수업 첫날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많고 그녀 자신이 눈썰미란 걸 먹고 죽을래도 없다고 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단상 앞에 서 있었으니까.

 

(꽤 실력있는 연금술사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몇 번 환생을 거듭해서 분위기가 많이 변해 있었고, 머리 색깔도 모양도 그 때와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도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수업을 경청했다. 물론 졸긴 했지만. 수업 탓인지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종반에는 거의 수면상태였다. 어찌어찌 수업이 종료되고, 그녀는 졸면서 받아 적은 기괴한 문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수업료를 파란 번개 둥지 위로 날리는구나. 가방에 책을 대강 집어 넣고, 말을 보관해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찰나였다.

 

-잠깐, 아까 교실을 여관으로 사용했던 아가씨. 거기 서도록.

교묘히 안 들키게 잘 잤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걸릴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뒤를 돌아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했다. 그가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로 웃고 있었다. 처음 만난 그 때와 같이.

-저... 죄송합니다. 어제 하루 종일 말을 달려서 오느라 그만...

일단은 변명과 함께 사죄의 말.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어느 정도는 이렇게 말하면 수긍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왠지 말이 없다. 무난한 반응을 기대하며 숙인 고개가 민망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이네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나 그녀의 예상을 뒤집는 말이라서, 그녀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멍청히 그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저 말이 나오지? 그냥 던지고 보는 말인가?

-그냥 던지고 보는 말은 아니고. 반응을 보니 그때 그 아가씨가 맞군요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빠져 나왔다는 걸 알아챌 즈음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자포자기한 채 끄덕 수긍했다.

-어떻게 저인 줄 아셨죠? 외모도 바뀌었고...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금술사는 그런 거 할 줄 알아요?

그가 쿡쿡 웃었다. 아무래도 너무 놀라 되는대로 뱉다 보면 끝은 늘 이모양이다. 귀가 화끈거린다.

-그 검... 엄청 눈에 띄거든.

그녀의 에고 소드는 그날도 얌전히 등 뒤에서 희미한 금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아차...평소 거의 한몸처럼 등에 지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다. 외모만 바꾸면 뭘 하나. 그래도 의아한 건, 눈에 띄는 대검이긴 하지만 흔한 무기다. 왠만한 여행자들은 다들 호신용 무기 하나쯤 갖고 있기 마련이다. 실제 강의실에도 자신과 비슷한 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정령 무기용으로도 인기있어서 같은 무기가 최근 눈에 띄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알아봤다. 속마음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무슨 생각 하는지 알기 쉬운 사람이군요 그쪽은. 뭐 사실 처음 눈에 띄었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그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무례하게도 멋대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지만 지은 죄도 있고 왠지 반항할 수가 없다. 그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눈이 똑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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