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밝은 대낮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굳이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리는 때에 호숫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되면 마족 스크롤에 지배받는 광폭한 짐승들이 소녀를 향해 달려들 지도 모르지만, 소녀에겐 그 정도는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사실 혼자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정령이 묵묵히 소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니까. 실린더의 정령인 그가 소녀의 뒤를 따랐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의 본체인 실린더는 계약자의 등 뒤에서 불빛을 번쩍이고 있는 타워 실린더였으니까 딱히 어폐가 있는 것도 아니리라. 며칠째 꾸준히 소녀는 황혼이 어스름하게 내릴 때 쯤이면 이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집시 캠프를 찾아가, 매번 귀찮다는 듯이 그녀를 내치는 엘프 처녀에게 꽃을 한 송이씩 억지로 건네곤 했다. 오늘은 노란색 장미를 건넬 예정인 듯 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이런 걸 왜 떠맡기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지만 늘 강경하게 거절하지는 않는 엘프에게.
태양이 저무는 때, 인적이 드문 호숫가, 노란 장미, 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