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Quest

그냥 화요일

이유 없이 머리가 묵직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괴로울 때가 있다. 고질적인 두통이긴 하지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러저러하다고 말하고, 수납 창구에서 돈과 종이를 교환해서 다시 그걸 약으로 교환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굳이 의사를 찾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를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눅진한 베개는 간밤에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려가며 잤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뒤척인 흔적마다 불쾌한 갈색으로 말라붙은 자국을 보며 깨닫는다. 분명히 얼굴도,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려울 정도의 몰골이 되어 있겠지.

 

베개와 이불의 커버를 벗겨내 버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시간이 지나서 갈색으로 변해 버린 핏자국에서는 더 이상 설렘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내 베개와 이불의 커버는 흰색도 아니다. 열일곱 살이었던 나는 흰 카디건에 방울져 떨어지던 핏방울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순수하게 호好의 감정만으로 바라보았던 그 애는, 분명히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나를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 칠칠치 못하던 나는 옷에 묻은 얼룩을 빼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어째서 교복으로 새하얀 카디건을 채택했는지 늘 불평을 말하곤 했지만, 그때만은 이 실용성 없고 불편한 교복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 설레는 기억만 남기고 신기하게도 그 애는 흔적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없어져 버렸다. 핏자국도 결국은 사라져 버리듯이. 그렇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사라져 버렸다. 사라지지 않은 건 너무나 미워했던 너뿐이었다.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 전부를 너를 생각했었다. 시선으로 계속 너를 쫓으면서 네가 불행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었다.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네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있는지를 생각하면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너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게 누구든 질투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늘 먼저 사과를 청해오는 너였지만.

 

나도 모르게 다시 끼무룩 잠이 들 뻔 했다. 머리맡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화면을 손가락으로 움직인다. 화면에 표시되는 큰 숫자가 눈에 띈다. 사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날짜라는 건 단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오늘을 가리키는 이 숫자는 너를 만났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버려서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그런 날. 그렇지만 기우였구나. 못으로 새긴 자국이라면 그 위에 다시 못으로 새겨 버리면 되는 것을.

 

자, 오늘은 그냥 화요일. 쓰레기와 빨래가 좀 많을 것 같은 그냥 화요일

 

 

 

 

이별한 다음날, 이불 속,  피, 19금

'Que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9.05.27
  (0) 2019.05.27
흔적  (0) 2019.05.27
  (0) 2019.05.27